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내가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상대는 몰라줄까?"
"왜 나는 이렇게 힘든데, 상대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우리 부서 일은 내가 훨씬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왜 저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
이러한 감정은 부부, 연인, 친구는 물론 직장 사이에서의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하는데요.
사실, 이런 생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감정의 뿌리에는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게리 마커스(Gary Marcus)의 책 『클루지(Kluge)』에서는 인간의 뇌가 완벽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 속에서 이리저리 덧대어진 임시방편 구조물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줍니다. 그 말인즉, 우리의 뇌는 때로는 효율적이지 않고, 오류에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뇌의 착각 : 내가 더 많이 했다고 느끼는 이유
이러한 뇌의 구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내가 더 많이 했다’고 느끼고, ‘상대는 내 노고를 몰라준다’며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한 일은 나만이 온전히 알고, 그 과정 속의 피로감이나 감정들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죠. 반면, 타인이 한 일은 그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직접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훨씬 작게 체감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한 아내는 지치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한 일이 단순히 집에 머무른 것처럼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외부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크게 느끼지만, 아내는 그 모습을 직접 보지 않기에 '그냥 회사 다녀온 것뿐'이라 여길 수 있죠. 서로가 자기 중심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기게 됩니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한몫합니다. 우리는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더 집중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나는 항상 먼저 연락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상대가 먼저 연락한 날은 자연스레 잊히고, 내가 먼저 연락한 기억만 더 또렷이 남는 것이죠.
이러한 뇌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자주 사랑하는 사람과 충돌합니다. 사랑은 나눔인데, 어느 순간부터 ‘계산’이 시작되고, 누가 더 많이 했는지를 따지게 되면 그 따뜻했던 마음은 금세 식어버리게 됩니다.
관계에서의 갈등: 뇌의 착각이 불러오는 오해
이러한 인지적 편향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부부 관계: 가사 분담이나 육아에서 서로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하며 갈등이 생깁니다.
- 연인 관계: 한쪽이 더 많은 애정을 주었다고 느끼며 불만이 쌓일 수 있습니다.
- 친구 관계: 서로의 도움이나 지원을 인정하지 않으며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 직장 동료와의 관계: 동료보다 본인이 더 많은 업무를 했다고 느껴 불만이 생길 수 있고, 업무 평가 결과에 대한 불공정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관계의 갈등이 심한 경우에는, 서로 아끼고 챙겨주며 행복했던 과거의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최근 급증하는 신혼 부부 이혼율, 전례 없이 낮은 출산율은 사회적 구조뿐만 아니라 이러한 개인간 관계 갈등에서도 간접적으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갈등을 줄이는 방법: 뇌의 착각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그럼 이러한 갈등을 줄이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 자기 인식: 자신의 인지적 편향을 인식하고, 내 생각과 감정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혹시 내가 한 일만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죠.
- 감사의 표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한 일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설거지 해줘서 고마워." "오늘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그 짧은 한마디가 마음의 문을 엽니다.
- 의사소통 강화: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고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합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 상대의 입장에서 살아보기 : 하루 동안 역할을 바꿔보거나, 상대의 하루를 상상해보는 거죠. 직접 경험하진 못하더라도, 그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 자체가 갈등을 줄이는 첫걸음이 됩니다.
- 전문가의 도움: 이러한 갈등이 깊어졌을 때는, 심리 상담이나 커플 테라피를 통해 관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오해하고, 더 자주 갈등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어요.
오늘 하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준 작고 소중한 일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그 마음을 전해보세요. 그 작은 표현 하나가, 관계를 바꾸는 큰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완성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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